 ▲ 부암동 산책길 © 정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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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저마다의 보물 상자가 있었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곳에 나만의 비밀스러운 보물들을 감추어 두었지요. 보물 상자는 호주머니이기도 했고, 서랍 속이기도 했고, 장롱 안이기도 했고, 지하실의 허름한 구석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보물 상자는 부암동입니다. 고향 진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 와 부암동에서 지낸 지도 14년이 되었습니다. 부암동은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볕이 좋은 어느 날, 부암동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구두 대신 오랜만에 신는 운동화가 무척 가볍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이 가벼우니 걸음도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서울이지만 이곳의 시간은 반 박자 느리게 지나갑니다. 부암동에선 느린 걸음이 필요합니다. 이제 저와 함께 부암동 한 바퀴를 돌아볼까요.
민족 복음화의 숨결을 느끼다 부암동에 온다면 가장 먼저 CCC 역사·비전관을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CCC 역사·비전관은 평생 민족 복음화를 꿈꾸었던 고(故) 김준곤 목사의 삶과 사역의 흔적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1층에는 고(故) 김준곤 목사의 집무실과 개인 물품들, EXPLO’74 대회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당시의 물건들과 영상, 조형물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그 시절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1층 중간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형 통로가 놓여 있어 직접 그 길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한편, 2층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족 복음화의 현주소와 CCC의 비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CCC 역사·비전관 앞마당에는 ‘민족복음화의 꿈’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이 기념비에는 고(故) 김준곤 목사가 생전에 주창했던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민족복음화의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CCC 역사·비전관을 오른쪽에 끼고 왼편으로 들어오면 민족복음화전략센터가 있습니다. 고(故) 김준곤 목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비전과 전략을 계승하고, 그가 남긴 신앙 유산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전수하고자 만들어진 곳입니다. 2층 도서관에는 그가 생전에 보던 서적들이 꽂혀 있어 누구나 와서 읽을 수 있다. 1층 마당의 잔디밭에 마련된 나무 그네와 벤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도심 속 산길을 걷다 부암동의 매력은 서울 한가운데 숨어 있는 자연입니다. 부암동에 온다면 백사실 계곡 산책로를 꼭 한 번 거닐기 바랍니다. 점심식사에 들른다면, 식사 후 짝지어 자연스레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백석동길을 따라 걷는 길은 도시 속의 한적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언덕길을 계속 오르다 지칠 때쯤 예쁜 카페가 하나 나옵니다.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해 이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입니다. 산모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왼편에는 산을 둘러싼 성곽길이, 정면에는 부암동 전망이 인상적입니다. 산모퉁이를 넘어 걷다 보면 작은 숲길이 보입니다. 숲 안에는 도룡뇽이 살 정도로 물이 맑은 백사실 계곡과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의 백석동천 각자 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산 속에 들어온 느낌이 물씬 납니다. 15분 만에 산 속 깊은 곳에 와 있는 듯 물소리, 새소리가 정겹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놀랄 것입니다. 아늑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 Soon에 들릅니다. 카페 Soon은 CCC 역사·비전관과 같은 건물 3층에 있습니다. 2010년 10월 문을 열었는데 CCC 본부 간사와 나사렛뿐만 아니라 부암동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찾은 관광객, 등산객,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1, 2층으로 이루어진 CCC 역사·비전관을 관람한 후 보고 느꼈던 감동을 나눌 수도 있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카페 Soon은 마치 우리나라 옛날 마을마다 있었던 사랑방처럼 누구나 따뜻하게 품어 주는 공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CCC 본부의 풍경이 멋집니다. 카페 안에는 편안한 소파 외에도 복층 다락방을 만들어 아늑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구석구석 배치되어 있는 신앙 서적들도 읽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여서 신앙 상담과 순모임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입니다. 문턱을 낮추고 세상과 함께 소통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이때, 카페 Soon도 세상과 크리스천의 소통의 장이 되어 서로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예술의 세계에 취하다 카페 Soon에서 차를 마시고 쉼을 가진 후 아래로 내려와 길 건너편 윤동주문학관을 들릅니다. 얼마 전 영화 <동주>를 보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윤동주문학관을 들렀습니다. 윤동주문학관에 가면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아픔을 시로 위로하려 했던 윤동주 시인의 흔적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과 친필 원고 등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고, 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열린 우물’이라 불리는 전시실은 새로운 느낌을 선사합니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을 안고 산 윤동주의 삶은 현실에 지쳐 부조리와 타협하려는 우리의 삶에 묵직한 자극을 줄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서울 도심이 발 앞에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시 한 편 읊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 미술관을 소개 합니다. 자하미술관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술관입니다.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북악산과 인왕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1층과 2층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 전시실에서 내려다보는 인왕산 절경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자하미술관에서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더불어 미학적, 인문학적 바탕을 토대로 한 동시대 신진, 중진 작가들의 기획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환기미술관은 화가 김환기를 기념하여 개관한 미술관입니다. 본관과 별관, 수향산방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김환기의 작품을 항상 전시해두는 곳과 기념전, 기획전을 여는 기획전시장이 있습니다. 석파문화원이 운영하는 서울미술관은 2개의 전시실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평일 오후, 편안하고 조용하게 작품을 관람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서울미술관 3층으로 나가면 석파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 별서에 자리 잡은 정자로 대원군의 호인 석파를 따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크지 않은 공간에 정자와 별서, 너럭바위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한 곳입니다. 부암동도 식후경 이제 배가 고플 시간입니다. 부암동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먹거리가 아닐까요? 부암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있습니다. 데미타스. 길가에 세워진 메뉴 입간판을 지나 식당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풍금과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손님을 맞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올라선 2층은 빈티지하고 아기자기한 그릇들이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어 그릇 가게인지 카페인지 혹은 가정집인지 종잡을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합니다. 원래는 북유럽에서 사 모은 그릇을 파는 가게였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카페도 겸하는 공간이 됐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는 ‘고양이 맘마’와 ‘들깨 버섯덮밥’이 있습니다. ‘고양이 맘마’는 소담스레 담긴 밥 한 덩이에 버터와 간장, 가쓰오부시가 가미된 것으로 어렸을 적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어머니께서 간단하게 쓱쓱 비벼 주시던 버터 간장 비빔밥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나다. 돌담 벽에 ‘소소한 풍경’이라고 적힌 이 식당은 아름다운 정원과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가 고급스럽습니다. 인테리어는 서양식이지만 두부 샐러드, 김치 전병, 현미밥과 삼겹살 등을 파는 한식 코스 요리 집이라 한식을 선호하는 어르신들과 함께 오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구불구불 골목 사이에 숨겨진 듯 보이지만 사실 이미 많은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곳입니다. 식사는 2인 이상부터 가능해 혼자 갈 수 없으니 함께 가고 싶은 누군가를 미리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길목에는 와인 병들과 특이한 꽃들이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맛있는 파스타 향이 가득한 곳, 라비아. ‘봄’이라는 뜻의‘ 라비아’는 인터넷의 초록색 창에 ‘부암동 파스타’라는 검색어를 치면 상위에 랭크되어 있을 만큼 알려진 맛집입니다. 대부분의 메뉴가 맛있지만 특히 기름지지 않아 담백하고 쫄깃한 화덕 피자와 올리브 데코와 잘 익은 모시조개가 일품인 봉골레 파스타를 추천합니다. 올리브오일로 샤워를 한 봉골레 파스타의 면발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입 속에 퍼지는 촉촉함에 할 말을 잃게 될 지도 모릅니다.
‘라’는 태양을 뜻하는 고대 이집트어입니다. 라 카페는 세상 모든 이들과 공유하는 태양처럼 세상의 행복과 눈물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아 2012년에 문을 연 문화공간입니다. 한쪽 벽면에 자리한 라 책방에서는 라 공동체 사람들이 직접 선정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진한 우유 거품이 일품인 카푸치노나 초콜릿을 은근한 불에 녹여 만든 핫초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이어진 공간에서 운영하는‘라 갤러리’에서는 라 공동체 이사인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시간이 날 때면 부암동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세요. 생각지 못한 보물들을 만날 수가 있을 테니까요. 북악산 북서쪽 자락을 따라가다 보면 고즈넉이 자리한 부암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좁은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카페나 갤러리를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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