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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총회기자단 언론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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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뉴스 작성일22-05-05 13:51 조회9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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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신총회기자단 언론포럼 개최!

김남식 박사와 양 원 장로가 포럼강사로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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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신총회기자단 출범 기념 언론포럼 개최를 5.4일 총회회관5층에서 "장로교회의 정체성과 언론정책(총회 언론의 현실)"에 대한 포럼을 개최했다.

 

제1부 예배를 지용길 목사의 사회로 김병중 목사의 기도와 기독신문구조조정위원회 최광염 목사는 히브리서11장1-3절 말씀으로 설교를 하였고, 김만규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 제2부 포럼 진행을 김성윤 목사와 김병중 목사가 진행하였고, 총회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주제로 김남식 박사가 강의를 한 후, 양원 장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언론정책"이란 주제의 강의를 했다.


유튜브에서 시청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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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신총회언론포럼에서 김남식 박사는 "총회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김 박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성경을 기초로 한 정체성을 가지고 신학적, 교리적, 교회적 측면에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설립된 후 110년 세월을 지내오면서 부흥과 성장이 있었는가 하면, 수난과 분열의 아픔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장로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였다.

 

1. 선교사들의 지도자 양성 2.평양장로회신학교설립 3. 총회의 조직과 특성 4. 정체성의 계승과 확산


먼저 선교사들의 지도자 양성은,

 선교사들의 특성과 새로운 선교지에 교회가 설립되고 토착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중심이 되게 하는 것이 선교 방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놀랄만한 속도로 성장한 이유에는 선교사들의 헌신적 노력도 있으나 이러한 선교사들을 도와주는 열심 있는 교인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공훈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듯이 우리 나라 선교사들도 현지에 나가면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선교방법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놀랄만한 속도로 성장한 이유에는 선교사들의 헌신적 노력도 있으나 이러한 선교사들을 도와 주는 열심 있는 교인들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선교사들의 열성이 열매를 맺어 한국교회 성장의 바탕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훈련한 사람들이 '매서인'들이다. 이들은 성경과 쪽복음을 얼마간의 돈을 받고 판 이유는 그냥 주면 천하게 여기고 읽지 아니하기에 돈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이런 방법이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이들은 각 지방을 순회하였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입과 손발 역활이 되었다. 대화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매서인들에게 성경의 중심사상과 신앙생활의 원리를 교육하였고, 일선에 나가 어떻게 전도할 것인냐 하는 전도 방법을 훈련시켰다. 당시 한국사회는 남녀 유별이 풍습이 강하고, 내외법이 엄격하여 여자들에게 전도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선교사들에 의하여 전도부인이라 불리우는 여전도인들이 양성되었다. 옛 예배당에서 남녀가 얼굴을 보지 못하고 예배드리던 당시 상황에서는 이들을 돌보는 여성지도자가 필요했기에 여자 선교사들이 이 일을 맡았다. 1888년에 헤론 부인(Mrs Heron)이 여자성경연구반을 처음으로 조직하여 전도부인을 양성했고, 언더우드 부인(Mrs Underwood)도 이 일에 가담하였다. 초대교회의 지도자 양성의 방안을 먼저 믿는 사람이 일정한 훈련을 받아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선교사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고 이들이 돌보아야 할 지역이 광대하기 때문에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방안의 하나로 사경회가 있었다.

 

이 사경회는 1890년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에서 16명의 회원들로 성경연구를 시작하므로 처음 시작되었고, 1891년에는 선교사는 누구든지 자기 선교구역 안에 성경 학습과정을 마련하고 선교사가 직접 가르쳐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사경회의 진행을 보면, 오전에는 주로 성경공부와 찬송을 가르쳤고,

 

 오후에는 주일학교 지도법, 어린이 교육법, 간호학 위생 등을 가르쳤다. 또 가정을 심방하며 전도하는 실천과목도 있었고 기도시간도 있었다.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설립은,

 1901년의 공의회에서 대한야소교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한 것이 신학교육의 출발이다.

한국교회의 발전은 조사 제도를 통해 도전히 관리할 수 없는 상화아에 이르렀고, 한국인 목사를 양성해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정식 신학교육을 받은 목사가 있어서 교회를 관리하며 다스려야한다는 요구가 계속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제한된 선교사의 숫자로는 급성장하는 교회를 가르치고 관리할 수 없었고, 사경회나 조사 제도로서 이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했다.

 

둘째 새로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인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의 제물이 되기를 열망하였고,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투신하기를 원했다. 셋째는 외국인이 선교사의 전도보다 같은 언어와 품속에 살아온 동족끼리의 전도활동이 보다 효과적이라느 사실이 지적되었다. 넷째 네비우스 선교 방법에 의해 자치교회와 자급교회로 성장하기 위하여 한국인 목사의 양성이 필연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요인 속에서 신학교 설립을 위한 결의가 있게 되었다. 1901년 합동공의회에서는 신학교를 설립키로 결의하고, 학교 이름을 대한야소교장로회신학교라고 하였으며, 신학 위원을 선정하고 학교 위치를 평양으로 정하였다. 학교 이름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대한 대신에 조선이라 불리게 되었고 우리가 흔히 평양장로회 신학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며, 오늘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전신이다. 1901년에 시작된 신학교는 초대 교장이 마포삼열 목사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블레어(Herbert E, Blair)는 평양신학교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약술하였다.

 

"성경만이 강조된 교과서이며, 연구 교과서이다. 모든 목사들에게 한결같이 신학적 영향을 끼친 이 신학교는 선교사 교수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총회의 권한으로 넘어가기시작했다. 역사적 칼빈주의의 배경을 지니고, 웨스트민스터표준을 수납하며, 장로정치를 채용한 장로교인들은 구 프린스톤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심치 않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그 중심이 있는 복음 이야기와 이에 대한 바울의 초자연적 해석을 선교사들이 가르쳤고, 한국 교회는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총회의 조직과 특성은,  

 1907년에 조직된 독노회가 전국 규모이기에 지역이 넓고 회집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7대리회로 나누었다. 7대리회 산하에 속한 교회는 약 737개 교회가 되었다. 경충대리회산하에 50교회, 평북대리회 산하에 160교회, 평남대리회 산하 89교회, 황해대리회 산하 47교회, 전라대리회 산하 127교회, 경상대리회 산하 186교회, 함경대리회 산하 78개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설립은 한국에서 장로교 총회를 조직하는 기초를 제공하였고, 북장로교,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 소속 선교사들이 비록 파송된 교파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독노회를 조직하였으며, 하나의 총회로 나아간 것은 선견지명이며, 현명한 처사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총회조직, 총회의 특성을 보면 1912년 9월 1일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전노회장 이눌서 목사의 사회로 총회가 조직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조선예쑤교장로회 제1회 총회이다. 일제 말엽에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시대에 총회가 모이지 못하였고, 또 해방 후 1950년 대구총회가 비상정회 하였으나 6.25 한국전쟁으로 속회하지 못하고 1951년에 속회 총회로 회집하므로 연대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의 선배들이 이룬 신앙 전통이 여러 번의 굴절과 고통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으니 이것이 우리 교회들의 저력이요 자랑이라고 하겠다. 일본의 강압 속에서 우리 총회는 민족의 가슴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복음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

 

총회의 특성은

7대리회가 노회로 발전하고 이를 모체로 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1912년 9월 1일 평양 여자성경학원에서 개회예배를 드리고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회무를 처리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여는 총회 조직은 한국교회의 방향을 정립하는 획기적 기회였다.

 

특성을 보면 자치 교회와 자립 교회, 그리고 선교 교회로 볼 수가 있다. 합동총회는 자립교회라고 김 박사는 말했다.

 

자치교회는 네비우스 선교 방법에 제시하는 대로 한국장로교회는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호주 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적 헌신을 모체로 하여 형성되었다. 선교사들은 선교사 공의회시기를 통해 한국에서 독립된 자치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천하였다. 네 개의 장로교 선교부에 의하여 복음이 전래되었으나 각 선교부가 교파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고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움으로써 교회정치에 있어서 남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는 총회를 세웠고, 한국교회에 의하여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게 하였다. 그 때 당시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의 무단정치가 강행되었고, 데라우치 총독이 음모한 105인 사건 등으로 기독교 말살정책을 시도하는 강압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교회는 민족과 함께 호흡을 같이하며, 민족의 가슴속에 큰 소망을 심어주었다. 나라를 뺴앗기고 좌절해 있는 백성들의 가슴속에 교회만이라도 하나의 독립국가의 조직을 형성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의 긍지로 받아드려지게 되었다.

합동총회는 자립교회로 본다. 총회는 복음을 받은 지 4반세기가 조금 지나 전국에 7노회를 조직하고 이를 모체로 한 하나의 총회가 형성되 ㄴ사실은 괄목할 만하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자립 교회를 목표하고 성장 하였다. 여기에는 네비우스 선교방법의 공헌이 매우 컸다고 본다. 다른 교회나 개인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의 힘을 축적하여 이 힘을 바탕을 자립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총회를 조직하므로 자립교회를 목표하여 도시교회에서 산각벽촌의 교회에까지 자립 의지로 가득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손에 의해 복음을 바로 선포하고, 이를 모체로 모두가 자립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장로교회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립하려는 각오와 열의 속에서 계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큰 기대로 주님께 영광을 돌릴것으로 본다.

 

선교교회의 목표는

한국의 장로교회가 가진 특성은 선교하는 교회를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1907년의 독노회 조직 때부터 이루어졌다. 7명의 목사 중에서 1명의 선교사 파송키로 하였다. 1912년에 총회를 조직의 기념사업으로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키로 하였다. 서해 바다 건너편에 있으며,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관계를 맺고 있던 지역이다. 또한 이곳은 공자의 고향이라 하여 유교의 본산지격이다.

이곳을 선교지로 정하고 1913년에 박태로 목사 등 세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계속하여 박상순, 홍승한, 방효원, 이뎡영, 방지일 목사와 김순호 여선교사를 파송하여 한국의 선교지로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산동성 선교는 1950년 대의 중공 치하가 될 때까지 방지일 목사가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산동성 선교는 1950년 중공 치하가 될 때까지 방지일 목사가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산동 선교의 전통을 계승하여 중국 본토 선교와 대만 선교를 오늘날도 계속하고 있다. 대만 본토인이나 산지족 선교를 통해 선교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총회의 조직이 하나의 행정적 정비나 조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수립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는 일이다.

 

정체성의 계승과 확산은

해방 후 한국장로교회의 여러가지 이유로 분열의 아픔을 겪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장로교의 신학적 골격인 개혁주의신학이 교육되고 계승되었으며, 신학적 정체성이 확고히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총회신학교와 박형룡이라는 중요한 기둥이 형성 되었다. 즉 총회신학교라는 터 위에 박형룡을 중심한 개혁주의 신학이 맥을 이어갔다. 오늘 날 신학적 혼란이 극심한 때 성경적 개혁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며, 이것을 체계화하고 세계화하는 노력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총회의 정체성과 정통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단일교회로 출발한 한국장로교회는 지금 300여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 총회가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 개혁신학의 파수와 확산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다면 신학교육의 철저해야 한다. 신학교육은 넉넉치 못하다. 입학지원자가 급강하는 상황에서 목회자 수급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른 목회자 양성을 하여 한다. 그러기 위해 신학교수들이 교회의 교사로서 사명을 자각하고 헌신해야 한다.

 

총회의 신학적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자칫하면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러기에 총회의 정책이나 사역이 개혁주의 신학의 바탕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말로만의 개혁주의가 아니라 실천하는 개혁주의 행동하는 개혁주의를 일구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전도와 선교운동의 최선을 하여야 한다.

선교교회로 출발하여 이 전통을 계승한 총회의 사역이 있어야 한다. 전도와 개척운동의 재점화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총회는 1974년에 '만교회운동'을 전개하여 교회성장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등으로 교회가 폐쇄되고, 교인수가 감소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총회적으로 전도운동을 전개하고 침체된 우리의 상황을 역적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활로이며 도전이다.

해외 선교운동을 활성화 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선교국가로 우뚝 서 있는 우리 대한민국이지만, 합동은 GMS를 통해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선교사의 선발, 훈련, 파송, 후원 그리고 은퇴 선교사들을 위한 노후 계획 등을 치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또 단기선교를 위한 총회적 정책을 입안하고, 전국교호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

 

사회적 섬김운동의 전력을 해야 한다.

합동 총회는 대사회적 운동에 대하여 소극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섬김 사역을 통해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을 활발하게 전게 해야 한다. 

교회의 신뢰도의 회복이 필요하다.

안티 그룹들의 책동으로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추락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안티그룹 때문일까? 우리 스스로의 허점도 부인할 수 없다. 신뢰도 회복을 위해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 목회자 다운 목회자가 되는 기복적 자세 정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의 지혜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

우리가 가진 이니력 자원은 품부하다. 이것을 총회차원의 인재풀을 형성하고 이들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지혜와 슬기로 발전하여 향상시켜야 한다. 교회 성도들을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한 훈련을 시키고, 사회를 향한 섬김의 활동을 하게 해야 한다.

끝으로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는 장로교회 라는 정체성과 법리적, 역사적, 그리고 신학적 정통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개 교단중의 하나,로 행세하고 있다.

 

법치 총회의 전통을 만들자, 인재의 적재적소 활용의 지혜를 모우자, 언론정책의 체계화로 바른 메시지를 전달하자!

 

한가지 꼭 이루어 저야 할 것은 서로의 지체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꼭 전하고 실천하는 모든 분야가 되어야 하겠으며, 복음 전파에 주력하는 모든 언론인들과 기자들이 되시길 소망하며 사회에 등불 역활이 되는 언론의 정필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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